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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ny's Pick

잘가 AirPods Max!

짧고 뜨거운 사랑을 마치고 그녀는 떠났다.

2주.

애플은 자사의 공식 홈페이지와 애플스토어에서 구입한 제품에 대해서는 흔히 얘기하는 '묻지마' 환불을 허용한다. 현재 기준 14일 동안. 이 시간은 참으로 절묘해서 고객에게 있어 확신이 들지 않는 제품에 대해 나름 충분한 시험 사용 기간을 제공해주고 이 기간을 통해 구매에 대한 진짜 결정을 보류할 수 있도록 해준다.

 

주변 지인들에게 첫 손에 꼽히는 '애플빠'인 나에게도 이번 구매는 상당히 고민스러웠고 그만큼 조심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애매하지만 만만치 않은 가격대와 국내에 발매되기 전 해외의 리뷰어들을 통해 전해 들은 단점들과 불량 이슈들은 제품의 수령일이 다가오자 나를 극도의 패닉으로 몰아넣기 시작했다. 아주 솔직히 말하건대 처음으로 제품 수령 전 환불을 50% 정도 결심하고 정말 이성적으로 판단하려 노력하며 14일의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제품을 사용했었고 도저히 스스로 납득이 안 되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환불하였다.

 

AirPods Max의 공간 음향

이 아이를 순수하게 헤드폰의 범주에서만 다룬다면 돈값 못하는 애플의 이쁜 쓰레기라고 평할 수도 있다. 음질이 별로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 돈 주고 사기에는 주변에 훌륭한 선택지가 너무도 많다는 뜻이다. 하지만 에어팟 맥스는 경쟁제품 대비 뚜렷하게 경쟁우위를 점할 수 있는 요소가 있으며 이를 근거로 나는 에어팟 맥스가 명확한 타겟군을 두고 기획되었다고 생각한다.

 

1. 애플 생태계 안에서의 연결성

굳이 너무 당연해서 언급하고 싶지 않았지만, 제품의 기획의도를 생각한다면 무조건 알아야한다. 이 제품은 애플 유저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그리고 에어팟을 함께 사용하는 유저라면 에어팟의 연결성이 이 제품 사이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애당초 타사 제품이 비빌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뜻이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기기간의 연결성은 에어팟 시리즈 최대의 장점 중 하나이다.

 

2. 넘사벽의 트랜스페어런시 모드

소니의 WH-1000XM4의 기획 컨셉이 '벗지 않는 헤드폰'이다. 유저의 목소리를 인식해 자동으로 헤드폰이 주변음 허용모드 즉, 트랜스페어런시 모드로 전환이 되는 것인데 이때 들리는 주변음은 에어팟 맥스의 그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평하고 싶다. 에어팟 프로의 트랜스페어런시 모드를 처음 들었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에어팟 맥스는 에어팟 프로보다 더 많은 수의 마이크를 내장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더욱 입체적인 주변음을 유닛 안으로 너무도 자연스럽게 뿌려줄 수 있게 되었다. 가끔 두 기기 사이의 트랜스페어런시 모드 품질이 거기서 거기라는 리뷰어들을 몇몇 보았는데.. 못들어봤거나, 그냥 병신이거나.

 

3. 공간 음향

그냥 미쳤다. 사실 이게 핵심이다. 에어팟 맥스를 단순 헤드폰의 범주에 가둘 수 없다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공간 음향 기능 때문이다. 헤드폰을 쓰고 애플 티비라던지 왓챠 프리미엄에서 제공되는 전용 컨텐츠를 시청할 경우 마치 오디오 세팅이 아주 잘된 영화관에 와있는 느낌이 든단 말이다. 단순히 음악을 듣기 위한 도구에서 헤드폰 형태의 도구를 통해 귀가 할 수 있는 경험의 스펙트럼 자체를 확장시켜놓았기에 에어팟 맥스는 분명 헤드폰 이상의 무엇이라고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사실 환불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불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얘기한다.

 

추운 겨울, 왜 땀을 흘리니..ㅠㅠ

1. 결로현상

사실 솔직히 이건 내가 얘 편들려고 하는 얘긴 아니고, 헤드폰들은 조금씩 결로 현상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구조적으로 밀폐되어 있고 (겨울의 경우) 귀에서 나는 열이 외부의 찬 공기와 만나며 유닛 내부에 결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다만 애플의 경우 유닛이 알루미늄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온도의 차이가 더욱 커지며 결로 현상 또한 더 심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분명 알루미늄을 가공한 이어컵과 스테인리스 스틸의 텔레스코픽 암 그리고 아주 부드러운 메쉬 소재의 헤어 밴드. 오브제로써의 가치는 분명 경쟁의 상대 자체가 없지만 이런 오브제의 차별성이 결과적으로 겨울이라는 날씨를 만나 최악의 결과를 만든 게 아닌가 한다. 다만 마지막까지도 고민을 했던 이유는 나의 경우 외부에서는 에어팟 프로를 주로 사용하고 에어팟 맥스의 경우 실내에서만 사용하기 때문에 이 이슈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직접 소유한 물건은 병적으로 관리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탓에 손쉽게 이어 패드를 분리하여 안쪽에 생긴 결로와 스며들어간 이물질을 보며 받을 스트레스를 생각하니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그녀를 보내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2. 공간음향

그림의 떡이라 했던가. 분명 좋은 기능이고 획기적인 기능인데 국내에서 이 녀석을 마음껏 써먹을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어있지 않다는 것이 너무 컸다. 애플 티비라도 들어왔다면 정말 정말 고민하다가 14일이 지났을 수도 있는데 너무 좋은 기능을 당장에 써먹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게 너무 컸다. 실내에서 단순 음감용으로 듣기에는 WH-1000XM4라는 훌륭한 대안이 있었다.

결국, 손수 그녀를 다시 곱게 싸서 가로수길 애플스토어를 손수 방문하여 그녀를 보내주었다. 참 묘한 14일이었다. 애플의 제품을 처음으로 환불하였고 환불 사유 또한 제품에 대한 불만보다는 안타까움이 컸기에 개인적으로 느낀 단점들과 제기된 이슈들에 대한 보완만 이루어진다면 언제라도 주저하지 않고 다시 구매하려고 한다.

 

쿨하게 웃으며 환불을 받아준 애플스토어 가로수길의 John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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